현금 살포는 실패한 정책
피같은 세금 또 날릴건가
국부 키울 미래 투자해야
피같은 세금 또 날릴건가
국부 키울 미래 투자해야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서브스턴스'는 기괴하고 통렬하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상상력을 더한 강렬한 색채와 파격적 연출로 외모 지상, 탐욕적 인간을 마음껏 조롱한다. 권력과 대중 앞에 피(血)를 뿜어내고 존재가 소멸되는 마지막 장면은 더없이 강렬하다. 피는 육체의 근본이다. 피 같은 돈은 경제의 근간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생 회복'이라는 근사한 포장으로 전 국민에게 현금을 뿌리겠다 관두겠다 하고 있다. 1인당 25만~35만원을 지역화폐로 나눠주는 것인데, 지역화폐(2조원)와 더해 15조원이 든다. 나랏빚을 내야 한다. 이것이 핵심인 민주당 추가경정예산(추경)에 여당과 정부가 반대하자, 이 대표는 지난달 설 연휴 직후와 지난 10일 "민생지원금을 포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사흘 후 민주당 추경안에 '민생회복 스마일 토토(지역화폐)'으로 명칭을 바꿔 다시 집어넣었다. 19일엔 "스마일 토토을 죽어도 못하겠다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쓰는 것이 어떻겠냐"고 번복했다. 유력 대선주자의 말 바꾸기치고는 경망스럽다.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포퓰리즘 정치의 현금 살포 망령이 이토록 깊고 질긴 것인가. 현금 살포는 실패한 정책이다. 대선·총선 전후에 뿌려지는 현금은 우리 경제를 견인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인 2020년 2216만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 14조3000억원(가구당 평균 64만5000원)을 지급했다. 이어 3년간 11차례에 걸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586만여곳에 재난지원금·손실보상금 등 총 61조4000억원을 풀었다. 3조2000억원이 불법 대부업자 등에게 엉터리로 집행됐다(감사원 감사). 국민들은 '가짜 공돈' 맛을 알았다. 고가의 학원비를 내는 데 썼고, 값비싼 소고기 소비가 급증했다. 신규 소비로 이어진 내수진작 효과는 고작 30% 정도에 그쳤다(KDI).
"소비쿠폰을 주면 잘나가는 식당에서만 쓰게 되고 그렇지 않은 자영업자들은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는 이창용 한은 총재의 주장은 타당하다. 일시적 효과를 내는 고카페인 중독처럼 나라경제의 기초체력은 오히려 떨어졌다. 돈이 풀려 물가는 5%대(2022년)로 20년 만에 최고치로 뛰었다. 재작년 소상공인 폐업은 역대 최대 100만명에 육박했다. 구조개혁 없이 돈만 뿌려선 효과가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스마일 토토은 어느 정도의 가치일까. 현대차그룹이 역대 최대인 올해 국내 투자비(24조3000억원)의 절반을 넘는다. SK하이닉스가 내달 착공하는 용인산단의 첫 반도체 공장 투자비(9조4000억원),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가동 중인 반도체공장 투자비(11조5000억원)보다도 많다. 이런 스마일 토토을 반도체·인공지능(AI) 등에 쓴다면 수십 수백조원의 국부, 수천 수만개의 일자리를 가져올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반도체에 50조원을 투자하면 10년 후 500조원의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동의한다.(민주당은 추경안에 AI·반도체 등 투자에 5조원을 배정했다).
돌이킬 수 없지만 61조원의 돈이 허투루 뿌려지지 않았다면, 상당액이 신산업에 투입됐다면 어땠을까. 이제 사회에 진출하는 '코로나 학번'과 청년들이 최악의 취업난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나아가 이들 세대가 빚을 내 뿌린 61조원을 갚아야 하는 것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혈세를 내 돈처럼 뿌리려는 포퓰리스트의 구호는 공허하고 경박하다. 이재명표 선심성 현금은 '먹사니즘(Muxanism)' '잘사니즘(Jalsanism)'으로 포장돼 유통된다. 이는 세계 10위권 선진국 대열에 서 있는 대한민국의 가치와 국민의식을 포용하지 못한다. '못먹사니즘' '뻥사니즘' '막퍼줌' 같은 조롱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이 대표는 "세상이 바뀌었는데 바뀌지 않는 걸 두고 바보라고 한다"고 했다. 그의 눈에는 돈을 주겠다는데 마다하는 국민이 바보인 세상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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