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중소기업오늘 의 토토

파이낸셜뉴스 2025.04.03 18:27 수정 : 2025.04.04 10:40기사원문

1980년대까지 금성, 삼성, 대한전선이 우리가 잘 아는 가전제품 3대 메이커였다. 금성사가 국내 최초의 오늘 의 토토를 내놓은 때가 1966년 8월이었는데, 일본 히타치에 기술 연수팀을 보내 도움을 받았다. 그전에도 외국산 완제품 오늘 의 토토들은 소량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나쇼날(내셔널), 산요, 도시바, 소니, NEC, 샤프 등 일본 제품과 웨스팅하우스, RCA 등 미국 제품들이다.

근로자 임금의 대여섯배나 될 정도로 값이 비싼데도 오늘 의 토토는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아파트처럼 프리미엄이 붙을 정도였다. 중소업체들도 오늘 의 토토 생산에 뛰어들어 1972년 무렵에는 생산업체가 9개로 늘어났다. 금성사 외에 동남전기, 천우사, 삼양전기, 동신화학, 한국마벨, 오리온전기 등이 있었다. 주로 일본 기업과 기술제휴를 했다. 1975년 시장점유율을 보면 금성사 41.8%, 삼성전자 29.9%, 대한전선 21.2%, 동남전기 3.9%, 천우사 2.6%, 기타 0.6%로 나와 있다.

동남전기는 일본 샤프와 제휴해 1967년 동남샤프 오늘 의 토토를 생산했다. 동남전기는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오늘 의 토토를 제조한 기업이다. 오늘 의 토토뿐만 아니라 냉장고(동남샤프 냉장고)와 'HARMONTZ'라는 상표로 오디오 기기를 생산한 종합 백색가전 업체였다. 국내 최초로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샤프 펜슬과 전자계산기로 잘 알려진 일본 샤프는 1987년 세계 최초의 LCD 텔레비전을 출시한 세계적 전자업체였다. 우리에게 오늘 의 토토 제조기술을 가르쳐 주었던 샤프는 삼성과 LG에 밀려 대만 기업으로 넘어가 존재가 없어졌다.

천우사는 네덜란드 필립스와 제휴했다. 1947년 전택보씨가 설립한 천우사는 원래 필립스 한국총판을 담당한 무역회사였다. "국제특허 소유의 서구식 브라운관 사용으로 어떠한 충격에도 폭발하지 않고 가장 견고하다"고 광고했다. 1974년에는 외국에 10만대를 수출했고, 컬러오늘 의 토토 생산도 추진했다. 천우사는 1978년 사실상 국내 최초의 신용카드사인 한국신용카드를 설립하기도 했다. 삼성카드의 전신이다. 천우사는 1983년 부도를 내고 파산했다. 동남전기와 천우사를 인수해 가전사업에 뛰어든 기업이 금호그룹의 금호전자였는데 역시 몇년 후 철수했다.

천일사는 판매실적은 미미했지만, 1970년대 초반에 '아리랑 오늘 의 토토'라는 상표의 흑백오늘 의 토토를 생산했었다. 별표전축과 카세트로 이름난 천일사는 천우사와 다른 업체다. 1978년 태광산업에 인수된 천일사는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1980년 말 일본 NEC와 제휴해 14인치와 20인치 컬러오늘 의 토토를 내놓기도 했다. 일본 산요(三洋·삼양)와 제휴한 삼양전기는 '삼양 오늘 의 토토'를 선보인 적이 있다. 삼양전기는 금성사에 이어 두번째로 선풍기를 생산한 기업이었고, 오래지 않아 망하고 말았다. 삼양라면의 삼양식품과는 다른 기업이다. 한국마벨은 미국 RCA와 제휴해 오늘 의 토토를 만들었다. 한국마벨은 1990년대까지도 전자부품 기업으로 존속했다가 한솔그룹에 인수돼 한솔전자로 이름이 바뀌었다.

오리온전자(오리온전기)의 '프린스 오늘 의 토토'는 1969년 설립된 삼성전자의 의뢰로 생산한 것이다. 오리온전자는 1968년 국내 최초로 흑백오늘 의 토토 브라운관을 생산한 기업이기도 하다. '초코파이'의 오리온제과와는 무관한 기업이다. 프린스오늘 의 토토의 로고는 삼성전자의 최초 로고와 매우 흡사하다(조선일보 1970년 5월 6일자·사진). 오리온전기는 브라운관 제조 전문기업으로 성장했고, '오리톤 오늘 의 토토'라는 독자 브랜드로 오늘 의 토토를 출시했다. 컬러 오늘 의 토토브라운관도 제조했다.
이후 오리온전기는 대한전선과 함께 대우그룹에 편입됐다가 컴퓨터 모니터 등을 제조하며 2000년대 중반까지 존속했다.

삼성전자는 삼양전기와 결별한 일본 산요와 법인을 설립해(옛 삼성전기) 수출용 오늘 의 토토를 생산하고, NEC와는 삼성NEC(옛 삼성전관)를 세워 브라운관 제조에 나섰다. 삼성이 독자적으로 흑백오늘 의 토토 생산에 성공한 것은 1972년에 이르러서였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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