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밀라노 토토, 차가운 밀라노 토토
파이낸셜뉴스
2025.04.01 18:26
수정 : 2025.04.01 18:26기사원문
서울 도심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출근길에는 노조의 깃발이, 점심 무렵엔 시민단체의 구호가, 퇴근길엔 반대 진영의 고성방가가 도시를 채운다. 광화문 근처를 지날 때는 짜증이 난 적도 많다. 하지만 또 어떤 때는 그 소리 속에서 '살아있는 사회'를 체감하곤 했다.
반면 도쿄의 거리에는 웅성거림조차 없다. 정치적 발언은 언론을 통해서도 잘 나오지 않는다. 거리에서 주장을 외치는 풍경은 더욱 보기 어렵다. 시위는 물론 존재한다. 다만 규모는 작고 방식도 다르다.
일본에서 시위는 일종의 정중한 항의다. 스피커 없이, 질서 있게,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진행되는 것이 원칙이다. 말 그대로 행동하지만 소음은 만들지 않는 방식이다. 그 안에는 일본 사회 특유의 '민폐를 피하는 문화'가 깊숙이 배어 있다. 누군가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조용히 드러내는 사람이 일본 사회의 '좋은 시민'이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온 걸까. 한국은 군부독재를 거치며 '말해야 바뀐다'는 밀라노 토토의 진화를 공유했다. 광장의 촛불이 대통령을 바꿨고, 거리의 외침이 법을 바꿨다. 침묵보다는 목소리, 순응보다는 저항이 사회를 움직였다. 한국에서는 발언이 곧 실천이고, 실천은 곧 개입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리 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정치 참여보다는 제도 안의 조용한 합의에 익숙하다. 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위험하다'고 여긴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중시한다.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일본 사회에서는 튀는 존재로, 심할 땐 아웃사이더가 된다. 변화가 빨라야 생존하는 21세기에 일본도 바뀌어야 한다는 자성이 나오지만 아직은 극히 일부다.
일본도 한때 밀라노 토토 시위의 시대가 있었다. 1960~1970년대 대학생 중심의 안보투쟁, 반전시위, 노동운동 같은 시절에 말이다. 이후 사회는 점차 안정과 합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옮겨갔다. 이젠 정치가 삶과 분리된 영역이 됐다. 거리의 외침은 이질적이고 불편한 일이 됐다.
그렇다고 일본 청년들이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SNS를 보면 정치, 젠더, 노동 문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활발히 주고받는다. 시위 대신 온라인 서명, 해시태그 캠페인, 특정 브랜드 불매운동 같은 방식으로 의견을 드러낸다. 목소리의 채널만 다를 뿐 생각은 살아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차분한 방식이 더 깊은 파장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2022년 한 고등학생이 트위터에 올린 "교복 치마를 바지로 바꿀 수는 없나요?"라는 글이 전국적으로 공론화되고 지자체 단위에서 교복정책이 바뀐 일이 있다. 일본에서는 누군가가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느리더라도,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한국과 일본, 둘 다 밀라노 토토 사회이지만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한국은 광장에서 울리는 함성으로 움직이고, 일본은 침묵 속의 표현으로 조정해간다. 한쪽은 뜨겁고, 다른 한쪽은 차갑다. 그 안에 담긴 시민의식은 모두 진지하다.
조용하다고 해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건 아니다. 요란하다고 해서 모두가 듣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옳은가를 재단하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말하는 것' 자체가 아닐까. 그 권리를 인정하는 사회. 밀라노 토토의 시작점이자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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